Passage

고백론믿을 만해서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믿기지 않기 때문에 약팍한 지식으로 하나님을 담을 수 없기 때문에 믿는 것. 인간은 절대로 신을 이해할 수 없다. 오로지 신이 우리에게 계시하는 정도만 우린 신을 이해할 수 있다

 

기독교와 사회주의가 나아가 좌파가 아닌 이유

모든 기독교는 보수주의를 표방하기 때문이다. 보수주의자가 기독교인은 아닐 수 있지만.

인간은 신이 창조한 피조물이라는 점에서 또한 원죄 때문에 불완전한 것이 같지만, 자유의지 때문에 실존적으로 다르다는 것이 기본 특징이다. 

모든 인간은 태생적으로 죄를 갖고 있다는 것이 원죄론의 핵심이다. 그러므로
오직 은혜와 믿음으로써만 구원을 받을 수 있고, 행동(실존의 차원)으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다.

 

여기서 다른데, 사회주의자들은(진보주의자): 인간은 불완전하다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철학:
헤라클레이토스 인간은 변하는 것이 특징, 변하면서 타락한다’. 타락하지만 인간은 존재적으로는 우주 신적인 특징(로고스)을 품고있음. 다만 인간은 신과 단절되어 있어서 (존재를 알 수 없다) 계속 타락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신적인 것을 갈망함. 이때 까지는 문제가 없었다.

플라톤: 이데아(절대적인 무언가) 존재하지만, 인간은 신과 연결되어 있다. (단절과는 다름)

(사다리 이론: 신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는 연결되어 있음. 따라서 인간은 의지를 통해서 충분히 신적인 세계로 넘어갈 수 있는데 이 수단이 철인사회(사회주의의 기초가 된다)의 실현에 있다. 이 사상은 루소의 자연인, 마르크스 공산주의, 프로이트의 리비도와 에로스로 실존주의, 포스트모더니즘흐름으로 넘어가게 된다.  

사회주의 인간관은 인간의 불완전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인간이 가진 원천적인 불완전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결국은 지금에와선 상대주의를 절대적으로 신봉하는 상태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절대적 권위도 부정하는 지경이다. 

결국, 하나님과 비슷해보일 지언정 성격은 전혀 다른 것이다. 


사회주의에서 말하는 평등과 현재 우리나라에서 진행하는 복지 정책에 대한 반대의견

- 모든 복지정책의 기조는 부유한 사람들이 (있는 사람들) 가진 재산을 빈곤한 사람들에게 국가가강제력을 갖고 분배하는 골조로 한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삼성이나 대기업이 사내보유금이 많은거나 0.01%의 재벌들이 누리는 삶들을 보면서

 

너네는 돈이 많으니까 그래도 돼라는 표현을 쉽게 쓰고는 한다.

 

동감한다. 감정적으로는 혹은 순진한 이성으로는 있는 사람이 당연히 세금 좀 더 내면 좋다는 생각이 올라온다. 다만,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반대한다. 하나님이 원하는 방식, 곧 성경에 나온 방식으로는 사람이 가진 선한 양심으로 가난한 사람에게 선의를 베푸는 것을 통해 복을 받는 것을 추구한다. 하지만, 법으로서 이를 강제하는 것은 전혀 관점이 다르다. 복을 받는 법칙에서 아예 벗어난 방법이다.

오직 하나님의 법위에 있을 때 성공한다.

 

또 반대하는 하나: 상대진영을 미워하는 것.

태극기부대라고 해야 되는 지 모르겠지만, 어떻게 부르던 태극기 부대에 대한 제 관점은 두 관점이 동시에 존재한다.

1)    이 시대에 저 분들을 남겨두셔서 우리 나라가 유지될 수 있어! 너무 감사하다

2)    미움으로는 선을 이룰 수 없어. 저건 옳지 않아.

 

과격한 표현과 퍼포먼스가 집회에서 자행된다. 공포감을 자극하고 동지애를 자극하며 혐오를 이용한다. 신이 용서해도 사람의 심판은 남아있다는 대사를 어디서 들은 기억이 있다. 지옥의 자식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목적은 살리는 데 있기에 상대 진영을 혐오하는 것으로 복수를 이루는 것은 살인죄만 늘릴 뿐 목적을 달성하더라도 실패하게 된다

 

스데반의 순교의 모범이라면 나에게 실제 피해를 가하는 원수들을 두고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저들에게 죄를 돌리지 말라고, 저들이 몰라서 그러는 것이라고 대신 회개해주는 정신에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집회에서 이런 정치인들을 미워하지 않는 대신 뒤에서 그 사람들을 조종하는 악한 마귀들을 미워하고 대신 회개해주는 운동이 일어날 수 있으면 좋겠다.